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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

주        소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성내로124번길 14 (산성동)
운영시간
연  락  처 043-20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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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소개

상당산성

 

할아버지의 카메라는 손녀들에게서 오래도록 떨어질 줄 몰랐다. 상당산성으로 가을 소풍을 나온 일가족은 며느리와 아들, 어머니와 며느리, 아들과 어머니 등 조합을 바꾸어 가며 연이어 셔터를 누른다. 울긋불긋 아름다운 조명을 켠 상당산성은 넉넉한 마음씨로 시민들에게 그 품을 내어주고 있었다. 

 

 

+ 상당산성, 국가의 안위를 지키던 요충지

 

청주시민들의 포근한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는 상당산성(사적 제 212호)은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그 원형이 잘 남아있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석성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라는 큰 국난으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 대한 인식이 절실해지면서 영호남과 서울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인 청주가 가장 적합한 곳으로 논의되었다. 이에 따라 충청도의 군사책임자인 병마절도사가 청주읍성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상당산성에는 대략 3500여명의 병력과 승군이 배속되어 나라의 안위를 지켰다. 상당산성이라는 명칭은 백제 때 청주의 지명인 상당현(上黨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임진왜란 중인 선조 29년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부터 영조 23년까지 꾸준히 개축되었고 이후에도 여러 번의 보수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 나라를 지키던 든든한 상당산성, 이제는 시민의 쉼터로

 

성문 무사석의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중인 선조 29년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부터 3년여에 걸쳐 충청병사 유성추가 감독하여 대대적으로 성벽을 개축했고, 이듬해에는 산성 안에 구룡사, 남악사의 두 개 사찰과 비밀문인 암문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여러 번의 수축이 이루어져 성내의 여러 시설인 관아사, 군기고, 창고, 수구, 장대, 포루 등이 완성되어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의 세 개 문과 동암문과 남암문 두 개 암문, 치성 3개소, 수구 3개소가 있다. 

 

1977년부터 2년에 걸쳐 동남문루와 동문을 재건하기 위한 정비공사가 진행되었고, 1992년 말에는 동문인 동장대도 재건되었다. 또한 1995년에는 서장대규모와 위치가 확인됨으로써 상당산성의 온전한 모습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게 됐다. 동장대에서는 해마다 시민의 날을 맞아 나라의 운이 융성하길 빌고, 청주의 발전과 시민들의 가정이 모두 화목하고 평화롭기를 기원하는 ‘삼원제’를 지내고 성돌이 행사가 함께 이루어진다. 

 

상당산성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공남문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푸른 들녘이 한눈에 들어오며 가슴이 확 트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국가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천년의 세월동안 우직하고 든든하게 서 있던 상당산성이 이제는 시민들의 여가 시간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안락한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 상당산성 집현전

 

멋들어진 기와지붕이 눈길을 끄는 이곳은 방문객에게 열린 도서관이자 사랑방이다. 산성 경로당 2층에 위치해 주민들 뿐 아니라 상당산성을 찾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상당산성 집현전은 여러 동아리/단체들이 문화예술 프로그램, 독서토론, 교육관련 모임 등에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다인용 테이블과 TV, 전시공간, 휴식공간,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여럿이 함께 이용하는 만큼 음식물 반입을 금하고 있으며, 사용 후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리정돈을 통해 청결하게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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