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세대 기록

김지연 (b. 1971)

펴낸 기록
  • <연변으로 간 아이들> (2000, 눈빛)
  • <노동자에게 국경은 없다> (2001, 눈빛)
  • <나라를 버린 아이들> (2002, 진선)
  • <러시아의 한인들> (2005, 눈빛)
  • <거대 공룡과 맞짱뜨기> (2008, 눈빛)
  • <일본의 조선학교> (2013, 눈빛)
  • <축/언> (2013, AKAAKA, JAPAN)
  • <사할린의 한인들> (2016, 눈빛)
  • <전진상에는 유쾌한 언니들이 산다> (2020, 오르골)
  • 사할린주립민술관 초대전 ‘역사의얼굴’(2020) 외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
대표 기록 활동
  • 1999~2000년 중국으로 탈북 한 꽃제비들에 대한 기록

    1990년대 후반 북한의 식량난으로 꽃제비가 되어 중국으로 넘어 온 탈북민들에 대해 기록으로 남김. 같은 민족으로서 한쪽은 너무 풍부해 병들고 또 다른 한쪽은 굶주림에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각과 동포애적 관점으로 탈북자들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기록함

  • 2000~2002년 중국 동포들의 실태 기록

    당시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 머물던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과 중국동포들에 대해 기록함.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 침해 사례와 중국동포들이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을 통해 ‘동포’에 대한 개념을 좀 더 확장하는 인식개선을 꾀함

  • 2001~2002년 러시아에 있는 고려인들에 관한 기록

    러시아 연해주,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고려인들의 삶을 기록함. 2004년 국내 재외동포법 개정 이전까지 동포의 범위에 들지 않았음에도 고국에 대한 사랑으로 전통과 언어를 지키며 살고 있는 고려인들의 삶을 기억하고자 함

  • 2011년~ 현재 일본의 조선학교에 대한 기록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에 있던 도후쿠 조선 초중급학교와 후쿠시마 조선 초중급학교에 대한 차별의 역사를 기록하고 조선학교의 과거를 알 수 있는 기록물을 최대한 촬영 및 수집함. 조선 학교는 일본 정부의 끊임없는 차별 정책에도 민족 교육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해 온 조선 학교들의 노력을 기록함

  • 2014년 ~ 현재 사할린의 한인들에 관한 기록

    일제 강점기 러시아 사할린의 탄광지역, 제지 공장 등에 강제 동원된 한인들에 대해 기록함. 격동하는 현대사의 희생양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사할린 땅에 남아 정착하게 된 한인들과 그 후손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인터뷰함

인터뷰글

사진 다큐멘터리 작가 김지연씨

코리안 디아스포라: 흩어져 있는 한인들에 대한 기록

한 컷의 사진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사진 다큐멘터리 작가 김지연씨(50). 그녀의 작업은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일본, 그리고 사할린의 동포들에 관한 사진 기록이다. 국가를 잃고 난민이 되어버린 한인들의 삶을 20여 년간 아카이빙하고 있다.
첫 작업은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민들에 대한 기록 <연변으로 간 아이들, 1999~2000>이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의 식량난으로 꽃제비가 되어 중국으로 넘어 온 아이들을 몰래 돌보던 쉼터와 연변일대에서 만난 탈북민의 모습을 담았다.
이어 국내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를 포착해 <노동자에게 국경은 없다, 2000~2002>를 출간했다.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침해 사례와 중국동포들의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과정을 취재해 기록했다.
고려인들의 삶을 기록한 <러시아의 한인들, 2001~2002년>은 재외동포의 범주에도 포함되지 않는 러시아 동포들의 애환과 고국에 사랑을 담았다.
<일본의 조선학교, 2011>는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에 있던 조선학교를 담은 사진 작업이다. 일본 정부의 끊임없는 차별 정책에도 민족교육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조선학교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사할린의 한인들, 2016>은 일제강점기 시절 사할린에 강제 동원된 한인들의 정착 동기와 그 후손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아직 현재 진행형인 이 작업은 또 다른 이름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처럼 그녀의 기록 활동은 ‘코리안 디아스포라’라는 카테고리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남자도 하기 힘든 사진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국가를 상실한 채 살아가는 해외동포의 삶을 한 장의 사진 속에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여린 체구임에도 무거운 카메라를 마다않고 현장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해외에서 공부해 한국의 역사나 사회문제에 별다른 의식이 없었어요. 그러다 한국에 돌아와서 1998년 변영주 감독의 영화 ‘낮은 목소리’를 보고 쇼크를 받았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였는데 여성 감독의 시선에 비친 역사인식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같은 여성인데 나는 무엇을 했나 싶고, 여성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미 있는 삶을 갈구하던 내 삶에 변곡점이었죠.”

그날 이후 그녀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사는 ‘나눔의 집’을 찾아 설거지를 시작했다.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라 정기적으로 방문해 할머니들의 생활을 도왔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카메라를 들게 한 것은 나눔의 집 할머니였다.

“한참을 나눔의 집을 들락거리니 할머니께서 궁금했는지 ‘너는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더라고요.
그때 내가 뭐하는 사람인가 생각하다 사진 찍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럼 사진을 찍어야지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할머니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봉사를 시작했지만 속에서 겉도는 자신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어려움 없이 자란 그녀가 아픔을 평생 지니고 살아온 그들과 하나 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걸림돌은 그녀 자신이었다.

“봉사활동은 하면서도 밥을 못 먹는 나를 발견했어요. 아직도 내 안에 허물지 못한 벽이 있던 거죠.
밥 먹는 연습을 하려고 일부러 ‘밥 퍼주는 사람’으로 알려진 다일공동체에 가서 노숙자들과 밥 먹는 연습을 했어요.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공감하기 위해 트레이닝이었죠.
그러다 다일공동체에서 탈북자들이 있는 중국에 봉사활동을 함께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탈북자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탈북자와 관련한 사진 다큐멘터리가 기록집으로 펴낸 첫 작업이었다. 하지만 신분이 노출되면 안 되는 탈북 어린이들의 특수한 상황은 분단의 현실만큼이나 그녀에겐 아픈 기억이다. 21세기 지구촌 시대에 한쪽에선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넘어오는 탈북자의 실상은 믿고 싶지 않은 우리 현실이다.

커튼뒤에숨은탈북아이, 중국 연길, 1999

“탈북 어린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인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남한 아이들은 먹을게 넘쳐나는데 북한 아이들은 먹을 게 없어서 깡마르고 까맣고, 너무나 비교가 되었죠. 굶주린 아이들을 보며 국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일제강점기에만 국가가 없던 게 아니구나하는 그런 생각요.”

탈북민들을 시작으로 그녀의 작업은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일본, 사할린의 동포들에 관한 기록으로 이어졌다. 국가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한인들의 삶에 포커스를 두고 오랜 기간 카메라에 담았다. 해외라는 지리적 여건도 있지만,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기 위한 기록인의 무게이기도 하다.

“작업의 대부분이 한국근대사에서 피해자들에 관한 기록이에요.
때론 한국에서도 사라진 우리 전통문화를 난민처럼 살아온 한인들의 생활에서 발견하기도 합니다.
국가는 잃어버렸지만 고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전통을 이어간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거죠.
그들이 역사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기록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나의 존재감을 갖게 하는 작업에 대해 더 강렬해진 것 같아요.”

볼고그라드 8·15 한인 축제, 2001

시간은 사람의 흔적을 지우더라도 기록은 남는다는 그녀는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경험을 통해 기록에 대한 자긍심도 커졌다고 한다. 비밀상자가 열리듯 기록은 누군가의 역사가 전달되고, 연구되고, 파장을 일어나게 하는 나비효과를 가져온다.

“일본에서 조선학교는 외국학교 보다 더 심한 차별과 압박을 받는 곳이에요.
조총련 사람들이 관여하는 곳인데, 어렵게 찍은 조선학교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한국의 협회나 단체들이 조선학교 재건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사할린도 2014년부터 매년 방문하고 있는데, 거부감을 보이던 사할린 동포들이 이젠 기다리세요. 한국인이 많이 가면서 러시아에서도 한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어요.
길도 닦아주고, 한인기념물도 관리해 줍니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가장 뿌듯합니다.”

그런 그녀도 힘든 일은 사람과의 만남이다. 무엇보다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 때가 많단다. 그래도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업은 멈출 수 없는 그녀의 다음 작업 목록이다.

“탈북자들의 한국 정착기나 70년대 여공으로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바꾼 주역들, 그리고 국내에 정착하게 된 사할린 1세들의 자료들을 아카이빙 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이러한 기록이 한인들의 디아스포라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녀는 오지의 한국인을 찾아간다. 그들이 돌아가시면 우리는 알 수 없기에 더 깊은 오지를 찾아가 기록한다. ‘박수 받을 것을 생각한다면 이 일을 해선 안 된다’는 단호함이 눈 덮인 사할린의 사진에서도 묻어난다.

글 | 연지민 충청타임즈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