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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람(244)

강호생

“그림은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직관적 느낌을 옮기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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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명
    강호생
  • 소개
    여백으로 이야기하는 동양화가
  • 활동분야
    미술, 한국화 
  • 활동지역
    충북 청주 
  • 주요활동
    한국화, 수묵화 
  • 해시태그
    #강호생 #한국화 #수묵화 #동양화 

여백으로 이야기하는 동양화가 강호생

비어있음으로 채우는 여백, 그만의 언어로 말을 건넨다


“그림은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직관적 느낌을 옮기는 것이죠.”


동양화가 강호생(55) 작가의 말이다. 컬러풀한 바탕에 넉넉히 여백을 두고, 번지듯이 지나간 물감의 흔적이 보이는 그의 작품들과 맞닿아 있는 말일 것이다. 화가는 여섯 번째 감각을 지녔을까? 지금도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꿈을 꾼다는 그는 탐스럽게 핀 구름 속에서 아기의 모습이 보이고, 눈부신 빛기둥 속에서 사람의 형상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꼬마 화가로 이름났던 어린 시절


어린 시절의 강호생은 색깔이 나오는 것만 잡으면 무조건 그림을 그렸다. 당연히 동네에서 소년의 별명은 ‘화가’가 됐고, ‘그림’하면 강호생을 떠올리는 유명인사가 됐다.


“우리 동네에서 저를 두고 놀리는 말이 있었어요. 미술을 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걱정을 많이 하던 동네 어르신들이 가난한 삶을 이야기 할 때 ‘호생이처럼 산다’고 하셨지요.” 라며 지금은 너털웃음을 짓지만 그의 부모님 역시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하셨고, 결국 그는 청주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따면서도 주판알보다 여전히 붓이 좋았던 그는 미술 대학에 가기로 결심했다.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청주대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에 가면서 원 없이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학교에 가고 가장 늦게 나왔어요. 수위아저씨가 제게 열쇠를 맡길 정도였으니까요. 특히, 첫눈 오는 날 교정에서 그림 그렸던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첫 눈이 쏟아지던 해였는데 화선지 한 뭉치와 붓을 들고 교정으로 나갔지요. 쏟아지는 눈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저를 보고 기이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저와 붓이 하나가 되던 순간이었습니다.”



여백, 비움과 채움을 동시에 표현하는 훌륭한 기법


“어떤 글자가 보이느냐”며 그가 한 장의 종이를 내민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하얀 바탕에 ‘니’라는 글씨가 보인다. 그는 바탕을 바꾸어 보라며 그러면 다른 글자가 보인다고 설명한다.


“여백은 그런 것입니다. 어느 것을 바탕으로 보느냐에 따라 본질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요. 본질이 여백이 될 수 도 있고, 여백이 본질이 될 수도 있는 것. 즉, 여백이 있음으로 해서 본질이 살아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명을 듣고 그의 작품들을 다시 보니 먹의 농담이 드러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백을 살려주기 위한 바탕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여백은 비움과 채움을 동시에 표현하는 훌륭한 기법이라고 말하는 그는 필선의 생동감을 더하기 위해 여백을 최대한 살리면서 화면의 단순화를 꾀하고 있다. 그의 작업방식은 독특하다고 알려져 있다. 행위예술처럼 번개같이 붓이 가고 순식간에 끝나버려 직관의 느낌을 중시하는 것도 그의 방식이요, 재료의 특성을 생각해 작업실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재료의 양을 저울로 정확하게 재서 그리는 방식도 그의 모습이니 예술가의 세계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것이 확실하다. 최근 그는 컬러풀한 배경에 여백을 두고 붓·먹·물·벼루가 지닌 속성과 물의 양, 필선의 속도, 힘과 유연성, 물질 간 시차, 번짐의 속도와 방향 등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을 시도하고 있다.



마음을 비우고 살고 싶다.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예술가들의 삶이 그리 윤택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 역시 화가로서의 삶이 쉽지는 않았다. 갓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었을 무렵, 생활고에 지친 아내와 어머니는 그림을 그리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다 못해 작품들을 한 곳에 모으고 불을 놓는 일이 있었다. 그림이 타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의 속은 잿빛으로 까맣게 타들어갔지만 고부의 얼굴은 홍시 빛으로 물들며 희미하게 미소를 띠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오죽하면 이랬을까 그 때도 이해가 됐지요. 어머니와 아내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말리지 못했고 원망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학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그린 작품들은 불타고 남은 게 없습니다. 아깝지는 않지만 그 시절 그렸던 그림으로 저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후로 잠시 그림을 접고 신학을 공부하기도 했던 그는 다시 돌아와 붓을 들었고 지금의 화가 강호생으로 우리 곁에 있다. 그는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마음을 비우고 살고 싶다고 말한다. 붓 가는 대로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직관의 느낌을 화면에 옮기고 싶다. 그리고 그는 믿고 있다. 간절하게 믿고 의지하는 절대자가 지금까지 그를 도와준 것처럼 앞으로도 지켜줄 것이라고.


윤정미 사진 염종현
발행일 2016.12
제작/출처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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